
초겨울의 거실에서
통유리 커다란 남창으로 햇볕이 화사하게 쏟아지는 이 층 너른 거실,
온화하고 편안함이 초겨울의 스산함을 떨쳐 버리게 한다.
7개월의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가 함께 일광욕을 해 볼까? 하고
손자의 양말을 벗기고 바지를 벗겨 탱탱한 허벅지와 종아리를 꺼낸다.
뽀얗고 오동통한 종아리와 소복한 발등이
너무나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할미도 뼈가 앙상한 발과 홈웨어를 올려 종아리를 내 놓았다.
안고 있는 손자의 종아리와 발,
그 아래 할미의 만만치 않은 종아리를 나란히
쏟아지는 햇볕에 내민다. 금방 따뜻해진다.
유난히 살결이 흰 손자의 종아리는 자꾸 만 저보고 싶고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들게 한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서 할미 마음은 손자가 건강하고
평안하게 늘 이렇게 듬뿍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엄마 아빠는 물론이지만 아직은 건강한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큰 엄마, 사촌 누나와 형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도 모자라서
고모와 고모부와 외사촌 누나와 형까지 보고 싶어
안달을 하니 가족이 더 자주 모이게 된다.
오랜만의 아기라서 집 안에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손자를 봐 주는 우리 부부
손자를 본다는 핑계로 늘 웃고 즐겁고
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다.
이유식을 받아먹는 입 모양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일광욕, 이런 일에 행복해 하면서 즐긴다.
칠십 대 그 나이에 어떻게 힘들어서 손자를 봐 주느냐고 못 본다 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힘들면 도우미를 청하면 될 것을,
당연히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부부 같은 생각이다.
아기를 남에게 맡길 수 없음이고
또 여유로우면 불우 이웃도 도우며 살아야 하는데
하물며 내 가족 내 손자인데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세상이 참으로 가족 간에도 야박해 진 것 같다.
바랄 것은 다 속으로 바라면서 서운해 하면서도
내가 할 도리는 힘들면 안 하려고 하니 어른이 먼저 고쳐야 할 것 같다.
사실 각자 시부모에게 한 만큼 받으면 될 것인데
정성껏 잘 모신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싶으니
자기의 안일과 욕심만 채우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싶기도 하여 두려운 생각도 든다.
사랑이 데리고 따뜻한 거실에서 일광욕하다 보니
계절 탓인지 만감이 오가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었나 보다.
신종 풀류가 극심하다고 초비상사태인 난국에
사람이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함이 근본이라 여기며
그분의 뜻대로 사랑하며 살아보려 애쓰고 힘써야겠다고
또 다시 반복하여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초겨울의 오후 시간,
원고지 10장/20091121/송림 유애희
|